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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와 대학

[매일경제] 2006.09.06

역사상 `최초` 통일 국가로 인정받는 진(秦)나라는 왕조 수명이 14년에 불과한 초단명 국가였다. 그럼에도 사가(史家)들은 왜 유독 진나라에 `중국 최초`라는 칭호를 부여했을까?

많은 역사학자들 관점에서 볼 때 진시황은 길이 부피 무게에 대한 단일 기준을 마련한 세계 최초 통일 군주였다. 이른바 도ㆍ량ㆍ형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했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 대륙에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도량형이 제각각 난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려 500여 년에 걸친 혼돈에서 중국 대륙을 건져내기 위해 시황제가 제일 먼저 착수했던 사업은 마차 바퀴간 폭에서부터 쌀 됫박 크기, 저울추 무게 단위 등 도량형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 같은 진 왕조 통일시책은 그 후 수많은 왕조와 왕국들에 있어 최우선으로 반복ㆍ시행되어야 할 모범 사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진나라는 최초 통일국가라는 지위를 확고히 부여받았다. 

그로부터 무려 2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국가는 물론 기업 흥망성쇠마저 결정짓는 중차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현대와 같이 기술 발달이 급속히 진행되는 시대에서는 기술표준 선점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 기술개발은 R&&D와 표준화의 동시추구를 요구한다. 

한 예로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표준화를 추진한 MPEG(동영상 압축 방식)의 국제표준 반영으로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약 3억달러 수익을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교통카드는 선행적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역간 호환이 불가능하여 통합화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단말기 교체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례는 국가와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2005년, 대한민국 과학계는 학문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인지하지 못했던 과학자들의 구태의연한 관행으로 철퇴를 맞고 말았다. 이른바 `황우석 교수 사태`로 불리는 사건이 그것이다. 

논문 조작과 난자 기증을 둘러싸고 광범위하게 벌어졌던 최고 과학자들의 어리석은 행보는 과학계를 포함한 국내 대학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어느 정도 차이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렇게 수난을 겪고도 아직까지 우리 대학들이 달라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초에 시행되었던 BK21 사업 신청 결과는 상당수 대학이 여전히 20세기적인 의식 수준 속에 머무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을 뿐이다. 

세계적인 학문 육성을 위해 정부가 7년 동안 1조5000억여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에서 여러 대학들이 낙점을 받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다 각종 무리수를 연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중앙 일간지가 들여다본 국내 대학의 BK21 사업 신청 내용에서 어느 대학은 사업단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1년에 50여 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저자를 자랑스럽게 제시했다. 

이는 그 동안 교수 업적평가에서 질적인 것보다 논문 편수를 위주로 한 정량적인 평가만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양적 평가를 중시한 나머지 연구 수준이나 의의를 평가하지 못하여 꾸준히 한 주제를 오랫동안 깊이 있게 연구하기보다는 가능하면 많은 논문을 만드는 데 치우쳐 질적으로 우수하고 수준 높은 논문을 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정량적인 평가보다는 동료 교수나 전문가그룹이 모인 위원회에서 업적에 대한 질적인 면을 더 중시하여 평가하는 방식(peer review)이 채택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정량적 평가에서 벗어나 논문이 갖추어야 할 지적ㆍ윤리적 수준을 종합적으로 엄격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노벨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쇼트트랙에서 칼날 들이밀기가 이미 세계적 기준으로 자리잡았고, 휴대폰 분야 기술 혁신이 선진국 사이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시대에 우리 상아탑만 예전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연구 윤리나 저작권과 관련한 학계 의식 수준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인식이 행동을 지배하는 법. 세계 최고 철학자 칸트는 이미 200년 전에 이 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데.

[강태진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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