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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에서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과학적 낙관론자가 아닐까 한다. 생각의 눈을 뜨고 과학에 마음을 빼앗겼던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과학지식을 축적하고 과학기술을 익히며 과학에 설득될수록 자연스레 과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인류사에서 우리 시대만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적은 없었다. 때마침 이 시대에 태어나 과학의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면서 과학을 선도한 주역이었던 셈인데, 말하자면 나의 생은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흘러와, 마치 문과 문고리처럼 나와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과학적 낙관론은 나의 세계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사고와 삶은 저 관악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관악의 첫인상은 늠름함이었다. 처음 관악을 마주했을 때 그 훤칠한 바위얼굴이 하늘을 치올려다보는 광경에 압도되어 심호흡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공대 공릉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우리는 관악 캠퍼스의 터가 닦이기 시작하면서 헐벗은 관악으로 나무를 심으러 오곤 했다. 관악 발치께를 크게 휘돌며 큰길이 나고 그 한가운데 번듯한 본관과 도서관 건물이 세워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벚나무와 느티나무 곁에 주로 소나무와 아카시아 묘목을 심었다. 어린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려갔다. 미끈하게 잘생긴 바위들 사이사이로 진달래가 피어나면서 관악은 돌연 들썩이고, 벚나무가 연분홍 꽃구름으로 변하면 마음이 들뜨곤 했는데,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던 젊은 날, 나를 붙잡아 그 자리에 세워두곤 하던 순간도 그런 봄날들이었다. 관악 캠퍼스로 공대 이전이 끝나갈 무렵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젊음의 한가운데서 이방(異邦)의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와 연구에 파묻혀 지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 그 내용이 머릿속으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오는 느낌에 소스라치곤 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이래 미국의 과학기술은 모든 분야에서 가속이 붙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맹목적이었다. 이방인에게 둘러싸인 고적감 또한 어쩔 수 없었는데,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가만 눈을 감았다. 그러면 내 안의 지평이 열리며 관악이 서서히 떠올라 우울한 마음을 개운히 밝혀주었다. 이를테면 관악은 학문에의 정열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 사이에서 간혹 흔들리던 내 마음을 잡아주는 균형추였다.

유학생활을 빼면 내 인생의 여름도 관악에서 났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짙어질수록 관악의 품은 점점 커져갔고 이른 아침에 관악이 뿜어내는 기운은 싱싱하고 힘찼다. 연구실에 눌러앉아 공부하다 보면 뿌옇게 창이 밝아왔다. 달궈진 머리를 식히러 밖으로 나와 관악을 올려다보면 간밤에 머리로 흘러들었던 지식이 온몸으로 피돌기 하는 듯 느껴지곤 했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강의시간은 즐거움과 보람으로 채워졌다. 여름날 장마가 끝나고 연구와 강의로 지친 몸을 추스르려 관악을 올랐다. 정상에 서서 굽어보면 하루하루 나의 일상이 보이고 문득 젊은 날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후회는 없었다. 다만 가을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랐다.

 

관악의 가을은 멋지다. 잘 차려입은 신사의 품위가 풍긴다. 봄여름을 지난 산이 의례 그렇듯 관악은 가을이 되면 안으로 그윽해진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자주 깨닫곤 한다. 나도 인생의 가을에서 이렇듯 분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젊어서의 하루는 연구와 강의로 빡빡하고 숨 가빴다. 연구와 강의로 생긴 피로감은 또 다른 연구와 강의로 회복해야 하는 식이었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연구와 강의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채워졌는데, 내 곁으로 사람들이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는 일들이 하루의 긴 시간을 차지했다. 나를 에워싸고 머리를 맞댄 채 열띤 논의에 몰두한 사람들 속에서 생각했다. 나의 어떤 점 때문에 이들이 이렇듯 모여들었을 텐데, 그건 무얼까. 연구와 강의에 쏟았던 열정 한 줄기가 사람들 관계 사이로 흘러들었다. 나의 가을은 관악의 가을을 닮아가는 중이며, 오래지 않아 나의 의문은 풀릴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나’란 사람의 본질이자 내 생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므로, 나는 진지하게 그러나 즐겁게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가을날 관악은 물든 잎들을 바람에 흔들며 사색에 잠긴다. 그런 날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청년들 눈망울에도 사색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관악에서 보내는 날들이 쌓이며 점점 관악을 닮아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종종 내 청년시절을 생각한다. 당시는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젊은 가슴을 사로잡았고,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대변하듯, 대학생이라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체화하던 시절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하고많은 갈등으로 우리 사회는 출렁였고, 젊은 지식인으로서 대학생은 기꺼이 동시대의 과제들을 껴안고 혹독하게 고군분투했다.

 

그간 관악은 우리 사회의 두뇌와 심장 노릇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관악이 키워낸 엘리트들이 지성과 소명의식을 무기로 우리 사회를 움직여왔고, 그래서일 테지만 나의 삶도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개인을 통과해 공동체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 배움의 본령이었으니까.

 

아침나절의 활기가 물러가고 느슨한 오후로 해가 넘어가면 연구소에는 또 다른 활력이 밀려든다. 보고 싶은 얼굴, 뜻밖의 손님, 반가운 이들이 들이닥친다. 어떻게 맺어지든 사람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사람의 만남에는 늘 기분 좋은 온기가 흐르고 이야기와 웃음이 피어나고 생각거리와 고민거리가 오간다. 마음과 뜻이 맞는 ‘동지’가 모여들고, 길을 같이 걷는 생의 ‘도반(道伴)’이 다가온다. 지적 교류를 잇고 사회적 관심사를 공유하고 문화적 취향을 더불어 즐기며 의기투합하는 동안 내 삶의 결이 생기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나의 인생도 어김없이 겨울을 향해 저물어갈 것이다. 관악의 겨울은 고요하다. 눈이라도 와 하얗게 쌓이면 순백의 침묵으로 덮인다. 부동심으로 잠자코 선 그 자세가 담담하고 늠름하다. 흐르는 모든 것을 보냈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젊은 나를 안아 엄하게 키워주었고, 나의 재주와 열정, 탐구심을 쏟아 젊은 관악인들을 키우도록 품을 열어주었으며, 내 삶에 풍성히 열매를 맺도록 아낌없는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그 관악의 겨울을 멀리 바라보며 남은 길을 간다. 내 일생동안 관악에게서 받은 온갖 것을 다음 세대에게 되돌려주고 의연히 저물어갈 수 있기를, 나는 오직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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