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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저항의 법칙

[매일경제] 2006.04.11

1826년 독일 물리학자 게오르그 옴은 전류 세기가 강해질수록 전류 흐름을 방해하 는 힘 또한 강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옴의 법칙으로 더욱 잘 알려진 ' 저항의 법칙'이 세계 과학사에 등재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앞서 1590년 '피사의 사 탑' 실험을 통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입증한 물체 낙하 운동 역시 가벼운 공기조 차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저항력을 가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입증했다. 

마찬가지로, 힘과 변형의 비례 관계를 입증한 후크는 탄성의 법칙으로 작용에 따른 반작용 현상 을 경쾌하게 설명해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같은 물리적인 저항력들이 실생활에서 반드시 악재로만 작용하 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IT 강국으로서 대한민국 주가를 한창 높이는 데 혁혁한 공 헌을 하고 있는 반도체는 전기 저항을 효율적으로 응용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수천, 수만 t에 달하는 화물을 실어나르는 비행기 역시 공기 저항 덕분에 이착 륙이 가능하며, 지진에 대비한 건축물 내진설계 또한 후크의 큰 공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연법칙이 우리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로봇과 달라서, 요구와 지시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문이 강하면 강할수록, 급하면 급할수록 이에 반하는 저항력은 더욱 커지게 마련 이다. 

초기 로마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이들 형제 가 집권 세력과 타협하기보다 대결에 치중한 나머지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 았다. 

로마 역사상 최대 최고 영웅이었던 줄리우스 카이사르(시저) 역시 대중적 지 지기반이 확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원로원의 미움을 사 결국엔 암살당하고 말았 다. 

따라서 줄리우스 카이사르가 애써 가꾸어 놓은 로마 번영의 기틀은 그 후 그의 양자이자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던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거두어들였다. 

우리나라 예를 들어보면, 1519년 기묘사화로 사사된 조광조 사상은 덕과 예로 다스 리는 유학의 이상적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었으며 자연질서 속에서 인간 존엄 성에 대한 이상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도학정치의 시도에도 불구 하고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개혁을 추진하여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결국 그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역사의 눈을 현대사로 옮겨와 보아도 개혁과 저항간의 조율 여부에 대한 성패는 여 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1930년대 공황기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언론을 등에 업는 설득의 정치를 펼친 끝에 미국 내에 사회주의 정책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세계 혁명 사상 최악의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중국 문 화혁명은 마오쩌둥 독단으로 시작되어 무려 10여 년 동안 중국 대륙을 혼란과 거센 피바람 속에 몰아넣었고 중국 역사상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가 장 중국적인 사회주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마오쩌둥의 이상은 그 후 말하기보다 듣 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바뀌고 말았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어느 누구보다 자연의 법칙에 밝았을 로버트 러플린 KAIST 대 총장도 정작 이런 역사 법칙에는 둔감했던 것 같다.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종합대학화 시도, 등록금 대폭 인상 등을 추진하다 구성원의 거센 반발에 밀려 연임의 꿈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는 능력도 중요하고 소신껏 밀어붙이는 결단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구 성원 동의와 참여가 없는 개혁은 이미 출발부터 그 결과가 예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 더욱이 상아탑으로 대표되는 지성의 장(場)에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다면, 개혁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상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면에서, 조상들의 슬기로운 여러 윤리 강령 가운데 일상생활에서 으뜸으로 거론되는 관용과 인내는 이 같은 마찰과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천적인 덕목으 로 꼽을 수 있다. 

아이디어도 좋고 취지도 훌륭하지만 관용 없는 결정, 인내 없는 추진은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 

개혁가는 저 항의 가능성을 고려해 관용과 인내부터 내면화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는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든다는데, 개혁을 둘러싼 최근 한국 사태가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재료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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