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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도 '우승'하고 싶다

[동아일보] 2006.03.31

우리나라 대학도 ‘우승’하고 싶다. 

한국이 월드컵축구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스포츠에서 거둔 화려한 성적 뒤에는 장벽이 무수히 많았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병역의무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힘과 기량이 가장 왕성한 수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했기에 많은 선수에게 해외 진출은 꿈에 불과했다. 또 각 선수가 속한 팀은 팀 전력 누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최고의 선수를 대표팀에 내보내려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을 짤 때마다 반복되는 학연과 지연도 드림팀 선발의 장애였다. 특정 대학, 특정 지역 출신들이 번갈아 가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대회에 나갔다.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이러한 고질적인 관행들이 통째로 뒤엎어진 무대였다.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이 월드컵대표팀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병역 특례’라는 초강수 당근도 동원되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해 보자’는 국민과 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했다. 

결국 잠재력을 200% 끌어올리는 노력이 뭉치고 뭉쳐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 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토리노 동계올림픽, 주니어 피겨스케이팅대회와 WBC 등에서 대한민국 스포츠는 놀랄 만한 기적을 잇달아 생산했다.

2006년, 한국 대학들도 ‘세계 최고’를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늘 입에 달고 살아온 외침이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 무엇보다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의지가 대단하다. 학연과 이해관계에 따라 대학 내 인사가 결정되던 고질적 인습들도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세계 대학 평가에서 국내 대학이 100위권에 진입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무대를 향해 뛰려는 한국 대학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은 많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김인식 감독처럼 자신만의 팀을 꾸려 갈 수 있는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권은 언감생심이다. 인화도 좋고 의지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없으니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 도전하는 것은 요원할 뿐이다. 

무얼 해 보려 해도 자원과 인프라가 여의치 않아 그만두어야 하는 아픔 역시 여전하다. 아이디어는 있어도 실현이 불가능해서 뭔가 해 보려는 목소리는 자연히 쪼그라든다. 어떻게 해서든 여건을 마련해 보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곤란하다” “위헌의 소지가 있다” “예외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리더를 뽑는 일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당사자들이 합의해도 밖에서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결국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보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정부의 가부장적 규제 의식은 변한 것이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대학이 세계무대에서 4강, 우승의 깃발을 꽂고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도쿄대와 같은 반열에서 대접받는 것을 꿈꾼다면 제도와 환경의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땅바닥을 기는 대학이라면 그때는 철퇴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2006년, 한국 대학들은 세계 4강의 스포츠 신화를 부럽게 바라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된다.

[강태진 서울대 교수·재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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