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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노년의 뇌'를 사회에 기여케 하라

[매일경제] 인사이드칼럼 2014.01.07

후스 전 베이징대 총장은 "대학은 큰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큰 학자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세계적 대학일수록 원로학자들이 대학 현장에서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하고 사회 변화를 이끈다. 

MIT의 언어학자 촘스키(85)나 에든버러대학의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힉스(84) 등 기라성 같은 노학자들이 대학의 둥지에서 연구와 가르침에 열정을 쏟으며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에 비해 우리 학자들의 노년은 고적하기 이를 데 없다. 원숙한 학문을 이룬 큰 학자라도 정년이 되면 대학에서 나와 은퇴의 길로 접어드는 탓이다. 학자에게 정년은 안주의 미혹이 되기도 하지만 절정에 이른 지적 탐구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절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년의 진짜 역기능은 지속적인 학문탐구나 연구로 성취될 사회의 지적 자산이 버려진다는 데 있다. 

영국 더럼대학 연구에 의하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구업적을 수립한 나이와 혁신가들이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한 나이는 2000년 기준으로 38세였는데 1900년에 견주어 6년이 늘어난 셈이다. 

38세에 얻은 아이디어에 20년 넘게 연구와 검증의 기나긴 과정을 거쳐 마침내 60세를 넘겨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미국의 법은 "어떤 사람도 나이 때문에 퇴직을 강요당해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는 대학 교수에게도 적용되어 연구주제가 충분한 가치가 있고 교육에 열정이 있는 한 교수들에게 정년은 없다. 

사실 정년은 대학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정년은 노년의 삶을 위협하고 또 한편에서는 세대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가 임박하면서 기존의 20-50-70, 20대까지 공부하고 50대까지 일하며 70대까지 노년을 보낸다는 체제는 30-60-100 체제로 바뀌어갈 것이다. 

인생의 짧은 시기에만 일하고 긴긴 세월을 일 없이 살아야 함으로써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자산과 혁신 에너지를 크게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상식과 달리 인지력은 중년의 뇌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정보 속도는 느려지지만 구술능력, 공간인식, 추리, 계획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의 뇌를 앞지른다. 체력은 감소하지만 지식이나 지혜는 세월에 비례한다. 

특히 노년의 뇌에는 지적 목표 달성을 위한 정신적 수단을 다양하게 바꿔보는 강점이 있다. 

현대사회에는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고 지적 활동을 꾸준히 축적하는 노인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다. 

그런 뜻에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한 함바테 바의 유네스코 연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사회에서 60을 넘긴 이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경험을 해왔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세상을 넘겨받아 사회발전과 변화를 주도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자녀로부터 독립해 노년기를 맞는 첫 세대다. 미래 사회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보며 변화를 일궈내고 다음 세대에게 삶의 모델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지적 자산을 계속 생산해내고 혁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생애 연장선상에서 청년과 노년이 공생하는 새로운 협력적 삶의 모델이 절실하다. 일하는 현장에서도 세대 간의 협조와 협치를 통한 혁신적 근로모델이 필요하다. 

청년실업 못지않게 노년의 정년 문제도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젊은 층의 창의성이 노년의 통찰력과 어우러져 혁신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회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강태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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