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인사이드칼럼]미국 경제가 강한 진짜 이유

[매일경제] 인사이트칼럼 2013.11.05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과 분화로 급변하는 시대에 혁신은 단순히 유행어가 아니다. 

영국 게리 하멜 교수의 말처럼 혁신만이 불확실성과 경제위기를 넘어서는 `진정한 처방이며 유일한 처방`이다. 신자유주의가 밀어붙인 글로벌화 속에서 기업들이 부침을 거듭해 온 길을 돌아보면 혁신이야말로 생존을 담보하고 나아가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말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기업들이 무너지고 한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용들이 약진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또다시 경제지형이 뒤바뀌었다. 전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엑손모빌, 월마트, MS만이 미국 기업이고, 브릭스(BRICs)의 공기업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미국자본주의가 신흥시장 국가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주는 듯 보였다. 

그런데 올해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9개를 다시 미국이 차지했다. 미국 기업들이 대거 귀환한 이유로 미국 정부의 제조업 육성책이라는 가시적인 이유를 먼저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 기업이 추구해온 끝없는 혁신, 즉 미국의 기업문화가 지닌 고유한 혁신 유전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에는 유서 깊은 기업과 생기 넘치는 신생 기업이 공존한다. 엑손모빌과 GE 등이 수십 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켜오는 중에도 구글(Google)과 징가(Zynga) 같은 신생 기업들이 출현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무수한 벤처들이 신기술과 혁신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미국을 또다시 제조업의 강자로 올려놓았다. 미국 기업의 최대 강점은 수직적 의사결정 방식을 통한 급진적 혁신에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소수의 리더가 혁신과 변화의 방향을 결정해 세계를 주도한다. 

한국은 어떤가. 디지털로 기술 패러다임이 전환하던 시기에 혁신으로 승부수를 던졌던 삼성을 비롯해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아성을 제치고 세계의 혁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팬택과 STX, 웅진 등 대기업 반열에 올랐던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가 많겠지만 이는 결정적으로 지속적인 혁신에 실패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전략을 갖추지 못해 벌어진 사태다. 

오늘날 경제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혁신, 제조기반, 비용경쟁력이다. 이 가운데 혁신이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미국 기업들이 부단한 혁신과 변화에 기민한 리더십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역전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서 경제석학들이 `선진국의 역습`을 미래 전망으로 일갈한 것도 3차 제조혁명 같은 혁신을 통해 제조기반과 비용경쟁력까지도 무력화시킴으로써 혁신만이 미래를 담보하는 동력임을 강조한 것이다. 

개인, 기업, 국가는 성장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로 거듭나고 실험적인 신생 벤처기업들이 끊임없이 부화하는 `혁신경제` 생태계가 조성돼야 가능한 일이다. 

양키정신으로 대변되는 자유분방하고 모험적인 미국의 기업가정신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다. 합의와 협력의 수평적 기업문화를 자랑하는 독일 기업처럼 정교한 기술력과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승부하고자 하는 강인한 기질도 부족해 보인다. 미국의 혁신의 민첩함과 독일의 점진적 혁신의 견고함을 좌표로 삼아 우리 몸에 흐르는 혁신 DNA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혁신의 판도라 상자를 열 열쇠는 우리 기업들과 청년들의 손에 있다. 창의교육을 통해 청년들의 혁신 유전자를 일깨워 지적능력을 높이고 도전정신을 체질화해야 한다. 이 길만이 벼랑의 위기에 선 우리 경제를 구할 수 있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