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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한국의 미래 `소프트 파워`

[매일경제] 인사이트칼럼 2012.06.05

덩치가 큰 상대 앞에서는 왠지 주눅이 든다. 그러나 상대가 그리 힘이 세지 않은데도 주눅드는 때가 있다. 힘에는 이처럼 물리력이 있고 심리와 감성력이 있다. 어느 편이 더 강한지는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다르나, 지금은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대세라고 흔히들 말한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학 교수 저서 `권력의 미래`가 출간되면서 하드와 소프트파워가 조화된 스마트파워가 부쩍 회자되고 있다. 한 나라 지도자상에서도 비전과 감성지능, 공감의 소통에 의한 소프트 스킬과 전통적인 당근과 채찍이라는 하드 스킬을 적절히 조합한 스마트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다. 한 국가의 소프트파워란 하드파워에 대칭되는 말로서 그 나라 제도, 문화 수준, 대외정책 등이 세계인과 여러 국가에 매력으로 작용하여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질서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하드파워에 의해 지배되었다면, 현대에는 전 세계인의 이데올로기에서 소프트파워가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소위 뉴노멀이 정착해가고 있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는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고 기업 활동이 국경을 초월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전파가 개도국에까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어 한 국가의 영향력은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미국 소프트파워를 얘기할 때 할리우드 영화,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 대중문화를 떠올리지만, 미국의 가장 큰 소프트파워는 과학기술에 기인한다. 이는 과학기술이 국경을 초월하는 만인 공통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 프로젝트는 냉전시대 미국 군사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했을 공산권을 압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학기술은 하드파워의 근간이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과학기술외교야말로 미국과 다른 나라 간 외교나 원조 프로그램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소프트파워는 국민 수준에서도 나온다. 그중에서 시급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질부터 향상시키는 일이다. 2011년 조사된 우리 사회의 질 순위는 OECD 30개국 가운데 28위로 하위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가 갖춰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의 실체와 이미지 순위는 50개국 가운데 각각 15위와 19위로, 세계인들에게 비친 우리 이미지가 실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프트파워가 많이 부족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제도 역량과 구성원 개인 역량이 균형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즉 국가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복지 역량과 개인에게 교육과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인적자본 역량을 높여야 하고, 개인은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응집성과 시민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하드파워만으로는 선진국과 어깨를 견주는 국가로 탈바꿈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 시작돼 최근 K팝으로 더욱 거세진 한류는 우리나라 소프트파워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후변화와 같은 과학기술적 사안들이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등장하면서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공표한 녹색성장전략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높여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국가적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기초질서부터 지키는 상식적이고 건강한 문화국가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나라도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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