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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서울대 법인화는 시대적 과제

[문화일보] 2011.06.09

고전적 대학의 이념은 1809년 독일의 훔볼트대가 설립되면서 완성됐다. 진리 탐구를 사명으로 하고 학생들의 교육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함을 목표로 한다. 또한 대학은 진리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사명으로 한다. 따라서 대학은 비판적 정신과 학문적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국가로부터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즉, 대학 내의 모든 일은 대학 구성원의 이성적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들어 대학은 진리 탐구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수월성 추구가 중시되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전제 아래 각국은 앞다퉈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개혁적 조치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대도 이를 반영해 비판적 정신과 자유의 바탕 위에 실용주의적 대학 이념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부는 대학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서울대가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서 인재 육성, 학문 연구 및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국가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사소한 행정적인 변경조차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국립대학의 현 운영체제로는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신속성과 유연성을 확보할 수 없어 대학 발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서울대는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법인화를 통해 안정적인 재정 확보, 의사결정의 신속성 등 일련의 자율적 기조를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학문 세계의 중심에 서야 한다. 서울대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를 수용한 자율과 책임의식을 고취하며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조화, 학문간 융합, 지식과 실천의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법인화가 국립대학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립대학 법인화의 원조를 제공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현재 법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가 현실화됨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는 구조조정 성격이 강해 일부 역량 있는 대학에서만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모든 국립대에 대한 획일적인 법인화와는 달리 서울대의 법인화는 정부의 확고한 재정적 지원 보장과 격려 속에 서울대의 특성에 맞는 내용으로 출발했다는 점이 다르다.

법인화에 대한 불안의 또 한가지 원인은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신은 학내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법인화와 관련된 여러 오해와 걱정들을 이해시킴으로써 해소시켜야 한다. 법인화의 향방에 대한 개방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법인화를 추진하는 집행부가 이를 반대하는 구성원들과도 성실히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서울대 학내 구성원은 물론 모든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일 것이다.

법인화를 통해 과연 서울대가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을 통해 세계 유수 대학들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법인화를 포기하고 현 체제에 안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비록 모두가 만족할 내용은 아니지만, 법인화를 기회로 삼아 구성원들의 경쟁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서울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강태진 교수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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