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인사이드 칼럼] 젊은이여, 스펙보다는 실력을

[매일경제] 인사이트 칼럼 2010.08.24

"학생들이 진리를 좇기보단 포장에만 신경써 문제"
"독서ㆍ봉사ㆍ체력단련 등은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진정한 자기계발 고민해야" 

일본 삿포로시에는 홋카이도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윌리엄 클라크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는 1876년 당시 황무지였던 홋카이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농업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미국에서 초빙됐다. 클라크 박사가 삿포로농업학교(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의 기틀을 세우고 일본을 떠나며 남긴 명언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는 지금까지도 많은 일본인의 금언이 되고 있다. 그가 말한 야망은 돈이나 덧없는 명성을 얻기 위함이 아닌,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성취를 말한다. 

요즈음 많은 대학교수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고민에 빠지는 것은 대학의 사명이 시류에 맞게 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학 본연의 뜻대로 자유인을 키워내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상아탑은 원래 여유롭게 사고하는 자유인을 길러내는 곳으로 출발했다. 오늘 우리 눈에 비치는 학생들은 학점, 외모, 경력 등 그 어느 면에서나 모자람이 없지만 130여 년 전 황무지를 앞에 두고 클라크 박사가 외쳤던 야망, 호연지기(浩然之氣)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2009년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졸자 고용률은 50% 전후에 머물고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취업 준비생들은 일명 `스펙` 쌓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인격 형성이나 진정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여유도 없이 불안한 마음에 스펙만 쫓아다닌다. 이런 스펙 쌓기 열풍은 비단 대학생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다양한 `스펙 업` 활동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는 중ㆍ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인들도 일과 후 학원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다니며 스펙을 쌓아야 낙오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고등학생이 졸업 전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니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기며 진리를 논하고 함께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던 과거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스펙을 쌓는 일은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으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진리를 좇고 자신의 지식을 쌓아 자아를 발견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지 않고 자신을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데 있다. 

포장도 문제지만 그 방법이 더 큰 문제다. 스펙 6종 세트(외국어 점수, 갖가지 자격증, 인턴 경력, 봉사활동, 어학연수, 외모)를 갖추기 위해 봉사도 안 하면서 확인도장이나 받고 돈으로 자격증을 사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기야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용서가 된다는 반교육적이고 반법리적 논리가 통하는 사회니 뭔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책을 보는 것, 봉사활동을 하는 것, 체력을 단련하는 것 등은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돼서는 본질이 왜곡되고 만다. "도서관이 신을 대체한다"고 말하는 석학이 있을 정도로 도서관과 책은 한 인간을 완성하는 뿌리인 것을 학생들이 잘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실력은 없으면서 요령과 실속 없는 과대 포장만 남지 않길 바란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자격증만 있고 문제해결 능력은 부족한 인재를 키워서는 안 된다. 

진정한 자기계발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성과 전문성을 살린 창의적인 스펙 쌓기를 하자. 속은 싸구려이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도금 제품이 아니라 겉은 투박하지만 갈고 닦을수록 빛이 나는 원석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