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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대한민국의 눈 천리안(千里眼)

[매일경제] 인사이트 칼럼 2010.06.29

"나로호와 월드컵의 아쉬움을 달랜 천리안위성"
"항공우주 기반기술 넓히는 과학한국 동력될 것" 

나로호 발사 실패라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우리는 월드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나로호에도 월드컵에도 우리가 열광했던 이유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이를 향한 무한한 노력과 온 국민의 소망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로호 발사가 연이어 실패했더라도, 월드컵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 녹아든 노력과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실패`라는 단어로 선을 그으며 가슴앓이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엊그제 월드컵에서 좌절한 안타까움을 달래주듯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최초 정지궤도위성 천리안이 프랑스령 기아나에 있는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천리안은 앞으로 7년간 하루 24시간 내내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국을 내려다보며 위성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리나라 기상과 해양을 관측하게 된다. 두 차례에 걸친 나로호 발사 진행 과정과 천리안 위성을 탑재한 아리안호 발사가 올해에만 6차례나 중단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주기술을 확보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정지궤도위성이 세계 상업용 위성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정지궤도 통신ㆍ해상ㆍ기상위성 천리안 발사 성공은 그 상업적 효과도 크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그 기능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특징으로 인해 광범위하고도 정밀한 해수온도 정보는 그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기상 이변이 잦은 최근 기후환경에서 뒤늦은 자료를 다른 나라 위성을 통해 전송받아 분석하는 것은 기상청으로서도, 우리 국민에게도 모두가 힘든 일이었다. 이제는 세계에서 7번째 독자 기상위성을 보유하게 되어 훨씬 정확한 기상 예보가 가능해질 것이다. 

천리안(千里眼).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천리안은 세상을 멀리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눈이 되어줄 위성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항공우주기술처럼 파급효과가 큰 거대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천리안이 내려다볼 한반도가 과학자들이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위한 기반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축복의 땅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자들 스스로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과학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승리`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차근차근 우리 기초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태극전사들이 분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그들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제 우리는 과정의 미학은 실패를 극복하는 데 있으며, 그것은 발전의 또 다른 이름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 역사는 한 맺힌 역사라고 하지만, 이제는 수동적으로 아픈 과거만을 곱씹기보다는, 선제골을 내주고도 만회하는 진취적인 역사를 써내려가야 한다. 나로호 발사를 지켜보던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을 기억하자. 그 아이들에게는 축구도 과학기술도 `주변국`이 아닌 `주도국`인 미래를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찾아왔다. 예전에는 매년 장마철이면 기습 폭우에 침수피해를 입고 산사태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소식이 뉴스 면에 넘쳐나곤 했다. 해마다 겪는 인적ㆍ물질적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천리안의 활약을 기대한다. 그리고 주변 강대국과 전쟁을 치르며 찌든 불모지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 국민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응원 속에서 제2, 제3의 천리안과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항공우주기술은 월드컵 이상으로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고, 우리 과학계와 국민은 이 계절의 열기만큼이나 목마르다. 나로호와 월드컵에 걸었던 소망과 국민적 기대를 가슴에 새기며 이제 또 다른 희망을 향해 뜨겁게 타오를 때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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