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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문제는 사람이지 칼이 아니다

[매일경제] 2008.12.07

세계는 지금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신용 쓰나미로 자유시장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앨런 그리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위기는 금융공학 남용 때문이라는 비난이 있다. 금융시장이 큰 위기를 겪다 보니 금융시장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금융공학도 그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도구적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늘 도구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동물을 잡기 위해 돌을 갈아서 쓰거나 금속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식, 채권, 선물, 파생상품 등을 취급하는 금융시장을 정확하게 보다 안정적으로 분석 예측하고 활용하기 위해 소위 금융공학을 탄생시켰다. 즉 금융공학은 인간의 부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형의 도구다.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으며 일각에서는 금융공학 무용론까지 제기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금융공학이 진정 무용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처음 사냥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도구는 점차 전쟁을 하기 위한 무기로 변질되었고 칼과 총, 그리고 심지어는 단 한 번에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핵폭탄까지 만들었다. 나쁜 것은 칼과 총, 핵폭탄과 같은 무기인가 아니면 그것을 살상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 그 자체인가? 문제는 도구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인간에게 있지 도구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금융시장 위기와 그에 따른 금융공학의 동반 추락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금융위기는 사람의 불합리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자유시장의 자기교정능력을 과신함으로써 방종한 모기지시장의 파괴력을 예측하지 못했다&"면서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 우려를 무시한 잘못을 인정했다. 최장기간 미국의 경제호황을 견인했지만 위기에 대한 예측에서는 눈을 돌려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한 임원이 보낸 이메일에는 `우리가 무능했거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신용평가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중립적 자세를 버렸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결국 인간의 불합리한 행동과 잘못된 대응, 책임회피, 윤리의식의 결여가 금융위기를 만들고 키운 핵심적인 원인이지 고도의 수학적, 통계적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금융공학이라는 실용학문 그 자체가 위기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금융공학에 금융위기의 책임을 일부 돌리고 금융공학의 위기 운운하는 것은 법정에 선 살인범에게 `잘못한 것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의 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도구는 가치중립적이며 금융공학 자체는 책임을 물을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의 금융위기로 인해 만에 하나 자유시장경제가 붕괴된다면 이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금융시장이나 금융공학도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유시장경제를 대체할 만한 다른 완전한 체제를 확립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다. 따라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금융시장의 자기탐욕적 방종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규제와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배제, 그리고 시스템을 활용하는 책임자들의 윤리의식 제고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그러나 시스템을 재구축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판단에 미숙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공학을 보다 정교한 분석과 예측이 가능하도록 더욱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동 기능까지도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금융공학의 미래가 있다.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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